정의
부채를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
내용
부채에는 단선(團扇, 또는 圓扇)과 접선(摺扇)의 두 종류가 있어 조선시대에는 경공장으로 공조에 접선장 4인, 원선장 2인이 있었고, 경상도에 선자장 6, 전라도에 선자장 2인이 배속되어 있었다.
선자장은 201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국가지정기능보유자는 김동식이다. 1993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선자장에 지정된 합죽선(접선) 기능인이던 이기동(李基東)은 2009년 해제되었다. 2012년 엄재수(합죽선)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98년 조충익(태극선)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19년 12월 별세하였다. 2019년 박계호(합죽선)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밖에 전라북도 전주의 엄주원(嚴柱元)이 있었다. 또한 1997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서천 부채장으로 이한규(李漢圭)가 있다.
과거 부채는 단순히 더위를 쫓는 용도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늘 휴대하면서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도 사용하여, 여름이 시작되는 단오절이면 국민 상하가 선물로 주고받는 중요한 품목이었다. 또한 중국·일본과의 중요한 국교품이기도 했다.
부채의 수요가 많으므로 대가 생산되는 경상·전라 지역에서 해마다 봉진하는 절선과 진상하는 부채의 수량은 수천 병이었다. 부채의 수요가 막대하므로 경상·전라 지역에서는 가업으로 또는 농가 부업으로 부채를 제작하였다.
고려시대로부터 조선 초까지는 단선을 주로 사용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후부터 접선의 간편함에 따른 수요가 확대되어 단선보다 더 애용하게 되었으며, 대껍질을 맞붙여 부채 살을 만든 합죽선이 고안되었다.
단선에는 그 형태와 문양에 따라 동엽선(桐葉扇), 초엽선(蕉葉扇), 연엽선(蓮葉扇), 파초선(芭蕉扇), 세미선(細尾扇), 까치선, 태극선(太極扇), 공작선(孔雀扇)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단선은 남원·전주의 태극선, 통영의 세미선, 전남옥과의 용선(龍扇)·옥선(玉扇)이 유명하였다.
합죽선은 대 껍질의 합죽(合竹)에 따라 유연함이 결정되는 섬세한 공정을 요한다. 1930년대까지도 남평산 합죽선은 합죽의 기술이 탁월하여 부채를 접으면 그 두께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였으며 부채 살이 정치하면서 유연하고 탄력성이 좋아 시원한 바람을 내었다고 한다.
선자장 국가지정기능보유자인 김동식은 4대째 합죽선 가업을 전승하였으며, 동성공예 대표로 있다.
이기동은 18세 때인 1948년부터 23세 때인 1953년까지 인후동 안골에서 합죽선을 제작하던 배귀남(裵貴男)에게 사사한 후 선방을 열었다.
엄주원은 18세 때인 1956년부터 22세 때인 1960년까지 문준하(文俊何)에게 사사한 후 인후동에서 미선공예사를 개업, 합죽선을 제작하였다.
조충익(趙忠翼)은 25세 때인 1974년부터 28세 때인 1978년까지 임성권(林聖權)으로부터 태극선 제작 기법을 배워 진북동에 선방을 개설하였다. 2019년 12월 별세하였다.
이한규는 충청남도 부여군 귀암면 부여두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농사를 가업으로 하였다. 그의 집에는 조선조 말기에 선대가 제작한 부채 두 개가 전해져 왔으며 옛 부채의 소중함을 인식한 아버지는 농사일을 하는 틈틈이 부채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이한규는 광산일, 농사일, 목수일로 직업을 바꾸면서 생활이 안정되자 아버지로부터 부채일을 배워 공작선을 제작하였다.
참고문헌
- 『규합총서(閨閤叢書)』
- 『선자장 전수계보』(전라북도, 1980)
- 「부채의 기원과 변천」(금삼대자, 『미술자료』 36, 국립중앙박물관, 1985)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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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선자장 [扇子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