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흰 옷과 빨간 옷

두런두런 이야기/진담 혹은 농담

by 레제드라마 2017. 5. 18. 21:40

본문



매일 출퇴근 하는 지하철역에 미스사이공이라는 음식점이 생겼다

베트남 음식점인데 값싸고 맛있는 곳이다

베트남 사람을 주방에 쓰는 게 원칙인 프랜차이즈라 짐작이 갔다

다른 지점에 있던 주방직원도 그쪽 나라 사람이엇던 기억이 났다


퇴근길에 친구와 볶음밥과 볶음면을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옆자리 벽에 붙은 탁자에  남자 둘이 벽을 보고 나란히 앉아있었다

남자들은 20대 초반으로 보였고 흰 옷과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벽을 보고 나란히 앉아있어서 처음엔 몰랐는데

흰 옷의 남자는 이미 음식을 열심히 먹고 있었고

빨간 옷의 남자는 부동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서 

먹고 있는 흰옷의 남자를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갸웃거렸다

왜 저런 상황으로 앉아있을까?

흰 옷과 빨간 옷은 무슨 사이일까?

가끔 전해지는 형제간의 따뜻한 미담의 주인공?

돈이 없는 형이 배고픈 동생을 한그릇 사먹이며 흐뭇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

혹시 흰 옷에게 돈 빼앗기고 먹을 것까지 제공하고 옆에서 침만 삼키는 것일까?

빨간 옷은 이미 먹고 배가 불러서 앉아있는 것일까?

흰옷과 빨간옷의 뒷모습을 보며 잠깐사이 참 많은 상황이 상상이 되었다.

손님이 많은 탓에 시간이 제법 지났고

그런 상황도 제법 오래 흘러갔다

여전히 우리는 둘을 보며 갸웃거리고 있었다

빨간옷은 참 꿋꿋하게 부동자세로 앉아있었다


흰 옷이 속삭였다

"니꺼는 왜 안나오노? 내꺼 다 먹어야 나오는 거 아이가?"

빨간 옷이 말했다

"몰라, 아직 안나온다."


우리의 의문이 한순간에 풀렸다

친구사이였고 같이 음식을 주문했는데

흰 옷의 음식이 먼저 나와서 먹고 있었고

빨간 옷은 자신의 몫을 기다리며 흰 옷을 보고 침만 삼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보통의 여자들은 그럴  때  친구의 음식이 나올떄까지

먼저 나온 친구의 음식을 서로 나눠 먹는다

그렇다고 내것처럼 게걸스레 먹어치우지는 않고

먼저 먹는 친구가 덜 미안할 까봐 아주 조금씩 먹어준다

먼저 먹는 친구도  혼자먹는 것 보다는

친구가 젓가락질이라도 하면서 기다리는 게 더 편하다

흰 옷과 빨간 옷처럼 내몫 네몫 간결하게 선을 긋고  행동하지 않기에

우리는 두 남자의  행동이 너무 재미있었다 


마침내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짭쪼름한 뽂음 간이 식욕을 확 당겼다

그때까지 빨간 옷의 음식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괜히 부동자세의 빨간 옷에게 미안해져서 눈을 깔고 조용히 먹었다

잠시 후 빨간 옷의 음식도 나왔다

빨간 옷이 민첩하게 음식을 낚아채갔다

마침내 우리도  면을 힘껏 빨아 당기며 먹을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부동자세로 음식을 기다릴때와 다르게

고개를 깊이 박고 음식을 먹는 빨간 옷의 뒤통수가 정겨웠다

음식은 절대로 양보할 수없는 것이 진리인가

이번엔 흰 옷이 부동자세로 빨간 옷을 보고  앉아 있는 것이다





 



  



'두런두런 이야기 > 진담 혹은 농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년 8월 8일 오전 09:42  (0) 2017.08.08
파란만장 대한민국은 세월호의 힘  (0) 2017.05.19
2017년 다짐  (0) 2017.01.01
아픔  (0) 2016.10.13
'구르미 그린 달빛' 중에서  (0) 2016.10.1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