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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4회 시산맥작품상> 땅의 문 - 최은묵 시인

두런두런 이야기/진담 혹은 농담

by 레제드라마 2013. 12. 2. 10:00

본문

수상작/ 땅의 문

근작시/ 벽지 외 4편

심사평/ 낮은 땅과 소통하는 터진 신발박남희

            타자(他者)인 수많은 존재들과의 인연송용구

심사위원김광기 나금숙 박남희 송용구 심은섭

 

 

땅의 문

 

 

터진 신발 밑창에서 땅과 연결된 문을 발견했다
발을 움직이자 나무뿌리 틈으로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지냈으니 눌린 것들의 소란은 도무지 위로 오르지

못했던 거다

 

나무 밑동이 전해주는 야사(野史)나, 자식들 몰래 내뱉는 어머니의 한숨,

대개 이런 소리들은 바닥으로 깔리는데

 

누워야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

 

퇴적층의 화석처럼 생생하게 굳어버린,
이따금, 죽음을 맞는 돼지의 비명처럼 높이 솟구치는,
발자국을 잃고 주저앉은 소리들

 

소나무는 자신이 들은 소리를 잎으로 콕콕 찍어 땅 속에 저장하고
땅에 발자국 한 번 남기지 못한 채 지워진 태아는 소리의 젖을 먹고

나무가 된다는 걸, 당신은 알까

 

낡은 라디오 잡음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는 뿌리 곁에
밑창 터진 신발을 내려놓았다


서서히 땅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오래된 소리들을 다 비워낸 문은 새로운 이야기로 층층이 굳어지고
나무들은 땅 속에 입을 둔 채 소리들의 발자국으로 배를 채울 것이다

 


벽지
— 가정법원, 여자의 진술 


나는 벽에 달라붙어 살았다
움켜쥔 손톱은 짓물렀고 등은 시렸다
이제 나는 지치고 늙어
그만 벽에서 내려오려 한다
지금껏 나는 혼자 단단한 줄 알았으니
못에 뚫린 자리는 비로소 바람에 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구멍이 아니라 들판이다
내 몸에서 벽화처럼 굳어가던 문양(文樣)의 나비들이
저녁해를 따라 떼 지어 날아가고, 들판은 점점 커지고
풀칠되지 않은 노을처럼 나는 너그럽게 주름진다
나는 벽을 떠난다
벽과 멀어진 이만큼으로 가볍게
나비가 앞선 들길로 간다
바람이 지나가면 길을 내주고, 잠시 멈춘 거기에 앉아
벽에 붙어 피곤했을 다리를 오래 주무를 것이다
딱딱하게 살았던 날들을 들판에 널고
천천히 데울 것이다

 

  — <시인시각>, 2012 봄호

 


틈, 바람의 그림자

 

바람은 날기 위해 그림자를 그늘에 둔다
그림자에도 무게가 있다
바람의 그림자는 낙태된 채 땅에 머문 소리들
틈마다 땅으로 묻히기를 거부한 소리들이 저항군처럼 숨어 있다
틈은 그늘의 소유다

 

담장 밑 틈 그늘에 풀이 돋았다
뾰족하게 풀이 돋았다
검(劍)처럼 솟은 저 푸른 잎은
태양의 검법을 배운다
날선 검을 세운 풀이 그늘을 가르자
틈에 숨은 소리들이 움찔거렸다, 순간
소나기처럼 볕이 다녀갔다

 

그림자가 붙어있는 모든 것들은 땅을 딛고 산다
땅으로 가야하는 것과 하늘로 향할 것들은
태초의 약속으로 나뉘었다
죽음은 무거운 그림자를 떼어내는 일
바람만이 죽지 않고 공중을 날아다닌다

 

하늘과 땅의 틈에, 물속 악어처럼 눈알만 내놓은 채 엎드린 소리들
소나기가 내리기 전, 이 후덥지근한 지열은 죽어버린 소리들이 토해내는

마지막 몸부림
빗물에 젖은 소리들은 땅속으로 사라진다, 그때
볕은 숨죽이고, 풀은 검을 접고, 바람은 섧은 춤을 춘다
저항은 끝났으나
여전히 틈은 그늘의 소유다

 

  — 제 4회 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불솜에 설탕을 뿌리는 계획

 

솜이불의 효력은 달콤함의 분량으로 정해진다

 

어릴 적 이불솜에 설탕을 뿌리려던 계획이 떠올랐다 흑설탕 백설탕 하다못해

먹다 남은 사탕쪼가리까지 달달한 것이면 모조리 비밀상자에 숨겨놓았다

 

어쩌면 이불솜은 날개옷을 숨긴 구름
등짐을 내려놓은 밤이면 이불은 나의 선녀였으나
나무꾼인 나는 선녀에게 푸근하지 못한 굳은살이었다
미안하다, 홑청으로 잡아두고 나만 홀로 달콤했던 솜사탕의 기억들
이따금 쓴 한약처럼 팽개쳤다가 슬그머니 끌어당겼다가
변덕의 발길질을 살갗 헐도록 받아준 오랜 날
방탄조끼처럼 나를 지켜왔던 솜이불, 그 시린 등을
나는 밤새 덮어준 적이 있던가
옷고름처럼 실을 풀었다
홑청을 벗은 선녀가 둥둥 떠올랐다
솜이었다가 구름이었다가
비밀상자에 숨겨둔 달짝지근한 성장기, 혹은
빙빙 도는 솜사탕,

 

이제 솜이불의 효력은 끝났다
이불솜에 설탕을 뿌리려던 계획은 오늘부로 무효다

 

  — <시와미학>, 2012 가을호

 

 

강냉이

 

말린 오후를 튀기려는 사람들이 말없이 모여 있다
설마른 기대는 아무리 뜨겁게 달궈도 크게 부풀지 않는다

 

나는 몇 배로 부푸는 현상을 뻥이라고 말했다, 바싹 마른 오후가

탈출이라고 항변했다, 그래

 

탈출은 근사하지
밀봉된 쇳덩이 안에서 뜨겁게 돌아가는 生마다
한 번은 소리 내며 솟구칠 것이니

 

뻥, 
부풀어 
제 살을 터트려도
그물망 하나 뚫지 못하는

 

마른 옥수수처럼 모여 살다 겨우겨우 한 때 모은 生을 튀기는, 복권방 사람들

 

  — <다시올문학>, 2013 여름호

 

 


치과에서

 

말을 다친 사람들이 상처 입은 말을 소독한다

 

나의 말에도 상처가 생겼다
먹이를 찾아 낮밤 소리 없이 움직이던 벌레들은
치아에 저장된 달콤한 말들을 골라 먹었다
입술을 열자, 작은 곳에 터를 잡은 벌레들의 아우성이 쏟아졌다
마취된 잇몸은 벌레들의 소란을 느끼지 못했다
어색하게 굳어버린 이와 잇몸의 관계처럼
벌레와의 오랜 동거는 내내 불안했다
아마 지금쯤 벌레의 집에 갇힌 말이
목발을 짚고 쪽창 밖을 바라볼 것이다
마른 몸을 혀에 기대고 애써 촉촉하게 버틸지도 모른다
허약한 문장이 재빠르게 목구멍으로 숨어버렸으니
나의 말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너덜너덜 입술 쪽창을 기웃거려야 하겠지

 

목젖이 메트로놈처럼 흔들리는, 치과에서, 벌레의 집을 청소하는 사람들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누워 상처 입은 말을 꿰매고 있다

 

 

  — 2013 <수주문학> 제 10집

 

 

[수상소감]

 


  아직도 갈대 잎을 흔들리게 하는 소리를 종이에 옮겨 놓지 못했습니다. 갈대숲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바닥을 기어가는 동안 숱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리마다 냄새가 있고, 저는 사람냄새에 머물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는 사람냄새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닥에 가까운 냄새일수록 아픔이 깊었습니다. 그런 냄새가 말하는 소리를 듣기위해 바닥에 눕고 엎드리고 기었습니다.
  바닥은 제가 은둔하는 터입니다. 이곳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계절만이 때에 맞춰 찾아옵니다. 그런 곳에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낯설기만 합니다. 저는 아직 찾아야할 냄새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시산맥작품상>은 낯선 손님이었습니다. 이 어색하고 어리둥절한 상황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저를 보고 사람들은 시인이라고 부릅니다. 학연, 지연, 인연 없이 문단을 배회하고 있는 저는 한때 좋은 시인과 좋은 시를 쓰는 시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구분을 선명하게 가르지 못한 채 막연히 시 앞에 섭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시 앞에 서면 늘 두렵습니다. 저에게 있어 시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머무는 곳인데도 그렇습니다.
  「땅의 문」을 찾기 위해 바닥에 누워있던 저의 소박한 몸부림을 주목해주신 ?시산맥?에 감사드립니다. 바닥에서 음지에서 간혹 볕 좋은 담벼락 밑에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준 투명한 영혼들에게 제일 먼저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곳에도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별이 뜨고 노래가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요?
  아직도 들어야 하는 소리와 맡아야 하는 냄새가 많습니다. 어쩌면 평생 다 적지 못할 만큼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낮은 소리를 통해 위로를 받은 제가 무얼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드넓은 시의 길에서 무릎이 헤지도록 기어보겠습니다.
  유명무명을 떠나 작품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큰 위로이며 격려입니다. 시산맥 작품상 수상자 전화 통보를 하면서 ‘좋은 시를 발표하고 더 좋은 시를 쓰라’던 박남희 시인의 조언은 큰 교훈이었습니다.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는 건 새로운 세상을 향한 움직임이 분명합니다. 제가 쓴 시를 읽어주고 묵묵히 응원해주는 소수의 독자에게 두 번째로 수상소식을 전했습니다. 마치 본인들의 일처럼 기뻐해주신 분들께 또 하나의 빚을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이 지금의 기쁨과 어색함을 모면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좋은 작품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시산맥?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도록 더 많이 고민하고 아파하겠습니다.

 

 

최은묵

1967년생.  2007년 <월간문학>신인작품상.  2007년 제9회 <수주문학상>대상 수상.  2012년 제4회 <천강문학상>시부문 대상 수상.  201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2013년 제4회 <시산맥작품상>수상.

 

 

<제4회 시산맥 작품상 심사평>

 


낮은 땅과 소통하는 ‘터진 신발’

                           박 남 희(본지 주간)


  올해로 시산맥 작품상이 제정된 지 4년을 맞는다. 처음에 시산맥 작품상을 제정하면서 우선적으로 내세운 취지는 공정하고 깨끗한 작품상이 되도록 운영해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 수많은 문학상이 있지만 진정으로 공정하게 운영되는 문학상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상의 상금 액수나 문학상을 수상한 문인의 유명도가 권위를 대신하는 기존의 문학상보다, 상금의 액수는 적지만 오로지 문학성만을 기준으로 공정하게 운영되는 문학상이 더 권위가 있다고 생각 한다. 그런 점에서 시산맥 작품상은 기존의 어떠한 문학상보다 부끄럽지 않은 문학상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1년 동안 시산맥 시인들에 의해 선정된 시산맥 작품상 후보작 20편은 저마다 그만한 규모와 무게를 지니고 있어서 어느 것을 선정해도 무방할 만큼 작품 수준이 높았다. 심사위원들은 시인들의 이름이 표기되지 않은  20편의 작품을 놓고 A, B, C로 점수를 매겨서 최종심에 여섯 작품을 올린 후 결선 심사에 들어갔다. 비교적 심사위원들의 고른 득표를 받은 작품은 송찬호의 <장미>, 안은주의 <물의 각>, 장옥관의 <탱자는, 탱자가 아닙니다>, 조정의 <시신기증>, 최은묵의 <땅의 문>, 황병승의 <목책 속의 더미dummy들> 등이다. 작품성이 높은데도  덜 주목받은 숨은 보석을 발굴하려는 시산맥 심사의 내부 기준을 참고하여 이미 문학상을 많이 받은 분이나 등단 연조가  짧은 시인을 제외하고 마지막 결선에 올린 시인은 황병승, 조정, 최은묵 등 세분이다.
  우선 황병승의 시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목책(나무 울타리) 속의 인형들이라는 상징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쓴 시인데, ‘설교 기계’로 대변되는 기성세대의 낡은 가치관을 풍자하고 있는 일종의 알레고리 시이다. 이 시는 상징성 짙은 제목과 사회성 있는 주제에 비해 내용이 지나치게 산문적이어서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시는 정치인으로 대변되는 기성세대의 가치관 뿐 아니라 기존 시의 문법까지 해체하려는 듯한 극단적 산문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내용이 기성세대의 설교(가치관 강요)에 국한 되는 단조로움을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조정 시인의 작품은  어머니의 시신을 해부학교실에 기증하고 귀가하는 화자의 복잡한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간접화법이 돋보이는 시이다. 화자의 충혈된 눈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머지않은 곳마다/ 신호등은 그 눈이 선지적으로 붉었다”고 진술하는 것이나, 임종하는 어머니를 “어머니는 영사기 리모콘의 꺼짐 버튼을 누르는 중이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간접화법은  슬픔을 억누르는 화자의 마음을 오히려 울림 있게 전달해준다. 이 작품은 작품의 진정성이나 절제된 표현 기법이 균형을 이룬 수작이다.  수상작과 마지막까지 겨룬 것만으로도 이 시인의 앞날이 기대된다.  
  끝으로 제 4회 시산맥 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최은묵 시인의 ?땅의 문?은 “터진 신발 밑창에서 땅과 연결된 문을 발견”한다는 참신한 발상을 바탕으로, 소외되고 억눌린 채 바닥으로 버려진 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화자의 마음이 따뜻한 울림이 되어 전달되는 시이다. 이 시는 ‘터진 신발’, ‘나무뿌리’, ‘퇴적층의 화석’같은 소외된 대상들을 ‘자식 몰래 내뱉는 어머니의 한숨’이나 ‘죽음을 맞이하는 돼지’, ‘발자국 한 번 남기지 못 한 채 지워진 태아’와 같은 숨은 야사(野史)와 연결지어 소통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해주는 수작이다. 특히 3연의 “누워야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는 진술은 직립 보행을 하면서 높은 곳만 바라보면서 사는 인간의 물신화된 욕망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어서 시적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또한 ‘터진 신발’을 통해 땅의 문을 열고 그동안 소외되고 버려졌던 땅의 소리를 듣게 된다는 상상력은 억지스럽지 않고 신선하다. 여기서 ‘터진 시발’은 문명의 상징인 ‘신발’의 소통부재를 뛰어넘어 맨발로 흙과 만나려는 시인의 소박한 마음의 기표이다.
  물신화된 가치관이 지배하는 이 혼탁한 세상에서 이렇듯 소박하고 신선한 시인의 마음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최은묵의 등단 연도는 일천하지만, 이 시인이 세상의 모든 타자를 깊이 바라볼 줄 아는 혜안과 뛰어난 시적 감수성은 시산맥 작품상 수상자로서 부족함이 없다할 것이다. 제4회 시산맥 작품상 수상자로 선정된 최은묵 시인에게 다시 한 번 축하하고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모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린다. 

 

 

<제4회 시산맥 작품상 심사평>

 

타자(他者)인 수많은 존재들과의 인연 


                     송 용 구(본지 편집기획집필위원장)


  제 4회 시산맥 작품상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살펴본 결과, 역량있는 시인들의 철학적 깊이와 언어예술이 대체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송찬호의 「장미」, 오태환의 「헛개나무야」, 유정이의 「아직」, 이정록의 「나비 수건」, 전기철의 「시인의 영토」, 조정인의 「땅꾼의 여자」, 최은묵의 「땅의 문」 등을 주목할 수 있었다. 이들 작품 중에서 오태환의 「헛개나무야」는 “나무”라는 생명체의 존재양식을 심층적으로 투시하는 인식능력의 날선 검(劍)을 보여주었다. 전기철의 「시인의 영토」는 막힘없는 사색과 한계 없는 자유의 요람인 내면적 “고독”을 시의 근원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최은묵의 「땅의 문」은  ‘나’와 타자(他者)의 관계, 개인과 세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고유한 존재양식(存在樣式)을 갖고 있는 모든 개체들의 상호관계 등을 포괄하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의 시는 위에서 열거한 작품들보다 훨씬 더 넓은 시(詩)의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
  최은묵의 「땅의 문」에서는 첫 시어(詩語) “터진 신발”이 상징하듯이 ‘생존’과 ‘소유’를 위해 전진하기에 급급했던 현대인들의 소통 부재와 자아 상실을 암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신발”이 “터졌다”는 것은 현대인들의 정신적 병리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터진 신발”은 현대인들의 부정적인 일상을 비판함과 동시에 그것을 변혁시킬 수 있는 긍정적 전환점을 제시한다. “터진 신발”은 문학적 아이러니의 기능을 발휘하면서 언어예술과 시대정신(時代精神)을 자연스럽게 결합시키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터진 신발”의 “밑창”을 통하여 화자(話者)는 이 세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을 돌아보는 마음의 여백을 넓힌다. 그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자 반려(伴侶)인 “땅”과 연결된 생명선(生命線)을 만져본다. 그는 “땅”이라는 공동의 터전에서 함께 살아온 존재들의 삶을 의식하게 된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지냈으니 눌린 것들의 소란은 도무지 위로 오르지 못했던 거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는 타자(他者)들의 삶, 그들의 좌절, 그들의 애환에 귀를 닫고 살아 왔다. 화자를 포함하는 무수한 현대인들은 “발자국을 잃고 주저앉은” 타자(他者)들의 삶의 “소리”를 소외시키며 살아 왔다. 그러나 “신발”이 “터졌다”는 아이러니를 보라! 자기중심의 어두운 감옥을 해체시키는 전환적 성찰의 힘을 발휘하지 않는가? “땅”의 토박이 “나무”의 “뿌리 틈”으로 전해오는 “소리들”을 향해 마침내 귀를 여는 화자의 전향을 따라가자. 
화자에게 잊혀진 이웃이었던 “나무”. 그 이웃의 전언(傳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화자. “땅”을 밟고 지나가는 ‘인간’이라는 이웃들의 환희, 절규, 아픔, 희망의 “소리들”과 그 “발자국”으로 “배를 채우는” 나무. 이 초록빛 이웃을 닮아가려는 화자. 그는 “나무”가 번역해주는 이웃들의 “주저앉은 소리들”과 “지워진 소리들”을 편견 없는 자연의 언어로 전해 듣는다. 화자는 “나무”와의 생명적 유대감을 공감한다. 그는 “나무”라는 공생의 동반자를 통하여 “나무”의 나이테에 새겨진 수많은 이웃의 삶의 기록들을 읽는다.

  최은묵의 시 「땅의 문」은 그의 시를 읽는 독자 개인과 수많은 타자(他者) 사이에 닫혀 있던 ‘상호관계’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었다. “나무”와 인간의 ‘상호관계’를 예술적 미디어로 전용(轉用)하여 끊어졌던 “소리들” 간의 소통의 네트워크를 복원하는 작품이 「땅의 문」이다.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은 “문학이라는 예술은 현실을 정신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최은묵의 시 「땅의 문」은  타자(他者)인 수많은 존재들과 시인이 맺고 있는 드넓은 관계망(網)의 ‘현실’을 형식미학 속에 용해하여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시산맥 작품상 수상작으로 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출처 / 다음카페  시산맥 http://cafe.daum.net/poemmtss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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