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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산국

두런두런 이야기/진담 혹은 농담

by 레제드라마 2018. 8. 23.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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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0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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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던 삼한 시대의 소국(小國).


[개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거칠산국(居漆山國)은 신라에 편입되어 거칠산군(居漆山郡)이 되었다가 경덕왕 때 동래군(東萊郡)으로 개명되었다. 거칠산국은 일반적으로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한조(韓條)에 전하는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의 다른 이름으로 보고 있는데, 장산국(萇山國) 혹은 내산국(萊山國)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관련 기록이 전하며, 모두 동일한 정치체 또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명칭 유래]
거칠산국이라는 국명의 유래는 지금의 부산 중심부에 있는 황령산(荒嶺山)과 관련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황령산의 한자어인 ‘황(荒)’과 ‘영(嶺)’은 모두 우리말의 ‘거칠다’라는 의미와 통한다. 황령산은 처음에는 ‘거친 뫼’로 불렸을 것인데, 이후 우리말과 동일한 소리와 뜻을 가진 한자어를 빌려 ‘거칠산(居柒山)’으로 표기하였을 것이다. 거칠산국은 거칠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정치체를 일컬은 것인데, 이칭(異稱)인 ‘장산국’과 ‘내산국’도 모두 같은 뜻에서 유래한 한자어이다. 장산국은 명칭상 현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위치한 장산과 직접 관련되지만, 별도의 정치체를 지칭한 것은 아니다.


[형성 및 변천]
『삼국사기』 거도(居道) 열전(列傳)에 의하면 탈해 이사금 때 거도가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을 쳐서 멸하였다고 한다. 거칠산국은 신라에 병합된 후 거칠산군으로 편제되었다가, 경덕왕 때 양주 소속의 동래군으로 개명되었다. 거칠산군의 속현이던 대증현(大甑縣)과 갑화량곡현도 이때 동평현과 기장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시대의 동래군은 울주 동래현으로, 속현이던 동평현과 기장현은 각각 양주 동평현과 기장현으로 편제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19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모두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우시산국은 울산으로 비정되며, 거칠산국은 부산 동래 지역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 거도 열전에 나오는 거칠산국을 부산의 동래로 비정하는 데는 이견이 없다. 『대동지지(大東地志)』 동래현조에서는 “동래현이 본래 거칠산국이었다”라고 하고, 『삼국사기』 지리지 동래군조에서도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군이었다”라고 한다. 이것으로 볼 때 동래현이 원래는 ‘거칠산국’이었는데 신라에 병합된 이후 거칠산군으로 편제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후 경덕왕 대 군현의 이름을 모두 한자어로 바꿀 때 음차(音借)·훈차(訓借)·지역적 특수성 등을 감안하여 새롭게 ‘동래군’으로 하였다. 치소는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일대이며, 영현인 동평현과 기장현은 각각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과 기장군으로 비정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권44 열전 4 거도전에 거칠산국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거도는 그의 가계와 성씨가 전하지 않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탈해 이사금 때 벼슬하여 간(干)이 되었다. 그때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이 국경의 이웃에 끼어 있어서 자못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는데, 거도가 변경의 지방관이 되어 그곳을 병합할 생각을 품었다. 매년 한 번씩 여러 말들을 장토(張吐) 들판에 모아 놓고 군사들로 하여금 말을 타고 달리면서 유희 놀이를 하게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 놀이를 ‘마기(馬技)’라 불렀다.

[군사를 동원하였을 때] 두 나라 사람들이 자주 보아 왔으므로 신라의 평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여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다. 이에 [거도는] 병마를 출동시켜 불의에 쳐들어가 두 나라를 멸하였다[居道 失其族姓 不知何所人也 仕脫解尼師今爲干 時于尸山國· 居柒山國 介居境 頗爲國患 居道爲邊官 潛懷幷呑之志 每年一度 集馬於張吐之野 使兵士騎之 馳走以爲戱樂 時人稱爲馬技 兩國人 習見之 以爲新羅常事 不以爲怪 於是起兵馬 擊其不意 以滅二國].”

『삼국사기』 권34 잡지 3, 지리 1 동래군조에 부산의 동래가 동래군으로 처음 나오는데, 군명(郡名)의 변화 및 영현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군을 경덕왕이 개명한 것인데 그대로 부른다. 그 영현은 둘로 동평현은 본래 대증현을 경덕왕이 개명한 것인데 그대로 부르고, 기장현은 본래 갑화량곡현을 경덕왕이 개명한 것인데 그대로 부른다[東萊郡 本居柒山郡 景德王改名 今因之 領縣二 東平縣 本大甑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機張縣 本甲火良谷縣 景德王改名 今因之].”

『삼국유사』 3권, 탑상편(塔像篇) 영취사조(靈鷲寺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절의 오래된 기록에는 이런 기사가 있다. 신라 진골 제31대 신문왕(神文王) 때인 영순(永淳) 2년 계미[683, 본문에 원년이라 한 것은 오기다]에 재상 충원공(忠元公)이 장산국[곧 동래현이니, 또 내산국이라고도 한다] 온천에 목욕하고 성(城)으로 돌아올 때 굴정역(屈井驛) 동지들[桐旨野]에 이르러 쉬었다[寺中古記云 新羅眞骨第三十一主神文王代 永淳二年癸未[本文云元年 誤] 宰相忠元公 (艹+長)山國[卽東萊縣 亦名萊山國] 溫井沐浴 還城次 到屈井驛桐旨野駐歇].”

『신증동국여지승람』 23권 경상도 동래현 건치 연혁조와 속현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옛날의 장산국[혹은 내산국이라고도 하였음]인데, 신라가 점유하여 거칠산군을 두었는데,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으며, 고려 현종(顯宗)이 울주에 예속시켰다라 하고, 속현조에는 동평현 현의 남쪽, 10리 떨어진 곳에 있다. 본래 신라의 대증현으로,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치고 동래군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이 양주에 예속시켰으나, 본조 태종(太宗) 5년에 다시 동래군에 귀속되었고, 뒤에 다시 양주에 예속되었다가 세종 때 다시 동래군에 귀속되었다”라고 하였다[建置沿革 古萇山國[或云萊山國] 新羅取之 置本居柒山郡 景德王改今名 高麗顯宗屬蔚州. 屬縣 東平縣[在縣南十里 本新羅大甑縣 景德王改今名 爲東萊郡領縣 高麗顯宗屬梁州 本朝太宗五年復來屬後復屬梁州 世宗朝復來屬].”


[참고문헌]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cncatv&logNo=221249214935

 

거칠산국 왕가의 '화려한 부활' 연제구소식 / HCN 뉴스와이드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gs557&logNo=221202257333

역사산행 황령산 거칠산국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ong1799&logNo=221156009438

고분군 왕릉제

 

 

http://cafe.daum.net/jb2001/86GI/5?q=%EA%B1%B0%EC%B9%A0%EC%82%B0%EA%B5%AD

 

 동래정씨의 나라 거칠산국 왕 이름 복원 프로젝트

http://cafe.daum.net/wjdxogk/gegi/10?q=%EA%B1%B0%EC%B9%A0%EC%82%B0%EA%B5%AD

 

 

 

http://cafe.daum.net/psub1972/EGyi/3870?q=%EA%B1%B0%EC%B9%A0%EC%82%B0%EA%B5%AD

거칠산국의 역사가. 베여있는 연산동 배산을가다

 

http://cafe.daum.net/busango24/5mie/843?q=%EA%B1%B0%EC%B9%A0%EC%82%B0%EA%B5%AD

거칠산국[ 居漆山國 ]

이칭별칭

내산국(萊山國), 장산국(萇山國)

유형

지명

시대

고대/삼국/가야

성격

가야 소국(小國)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래 부근

목차

정의

개설

형성 및 변천

정의

신라 초기에 복속된 가야(加耶)의 소국(小國).

개설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내산국(萊山國)’ 혹은 장산국(萇山國)’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신라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에 거칠산국(居漆山國)이 우시산국(于尸山國: 지금의 울산)과 함께 신라의 변경을 소란스럽게 하였기 때문에 탈해이사금을 섬기던 거도(居道)마숙(馬叔)’이라는 말달리기 오락을 빙자하여 이들을 멸망시켰다. 이 때 거칠산국은 거칠산군(居漆山郡)으로 고쳐져 신라에 편입되었다. 이 시기 가야와 신라는 현재의 동부 경남인 울산·언양·양산·동래 지방에 대한 쟁탈전을 벌였다. 거칠산국과 우시산국은 탈해이사금때 거도의 공략에 의해 신라에 병합되었으나 탈해이사금의 사후 다시 가야에 복귀하였다. 가야에 회복된 거칠산군은 장산국 또는 내산국으로 호칭되었다. 수로왕(首露王) 사후 금관가야(金官加耶)가 쇠퇴하고 포상팔국(浦上八國)이 침공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유적으로는 동래 복천동 고분군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동래는 원래 거칠산군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동래(東萊)로 개명하였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동래현은 장산국 혹은 내산국을 병합하여 거칠산군으로 삼았다가 경덕왕 때에 개명된 것이라고 하였다.

거칠(居漆)은 중세국어의 ’, ‘거츨로서 일본어의 카루(Karu: )’, 몽고어의 케르치(Kerci: 거칠)’ 등에 대응하는 말인데, 동래와 내산의 ()’, 장산의 ()’()’·‘장초(萇草)’라는 식물로서 모두 황폐하고 거친 땅에서 자라는 풀이다. 한편 거칠을 날이 갓샌다는 서광(曙光)의 의미로도 이해하며 의 원음이 속음(俗音) ‘으로 음전(音轉)함으로서 갓난이또는 막 태어난 아이의 시명(始明)을 뜻하는 갓밝이로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거칠산국과 내산국·장산국·동래현은 거칠다()’를 매개로 하여 연결되는 명칭이라 하겠다. 그리고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신문왕(神文王) 때의 재상인 충원공(忠元公)이 장산국, 즉 동래현인 내산국 온천에 목욕하고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는데,고려사(高麗史)지리지에도 동래현 소재 온천이 등장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가야초기 대신라관계(伽倻初期 對新羅關係)에서 본 경역(境域)에 대한 고찰(考察)(허만성,부산사학(釜山史學)28, 1995)

진변 한제국(辰弁 韓諸國)의 위치 시론(位置試論)(천관우,백산학보(白山學報)20, 1976)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96.1.5,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cafe.daum.net/nes42/4vI0/17?q=%EA%B1%B0%EC%B9%A0%EC%82%B0%EA%B5%AD&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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