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처럼 낯선 / 조경란 >
* 공중전화. 단신에게 가는 유일한 길. 사람들은 술만 마시면 공중전화에서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거나 심지어 그 전화통을 부수거나 하는 습벽을 노출한다. 그 사람에게는 공중전화가 일종의 상처이거나 마지막 비상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요즈음 나는 거리의 공중전화만 보면 사무친다. 내가 걸고 싶은 전화와, 내가 걸지 못한 전화와, 내가 걸었던 전화와, 내가 기다렸던 전화 때문에. 그 전화들 사이로 흘러간 주체할 수 없이 안타까운 시간들 때문에...
< 마이너리그 / 은희경 >
* 우리들은 서로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마음 깊이 믿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분명한 것은 서로의 인생이 얽혀버렸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하찮은 인연이 끝까지 따라다니며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의 인생을 잠식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연한 순간의 일이 그 사람 인생의 한 상징이 되어버리는 일도 적지 않다. 드렁칡이 된 사연부터가 그렇듯이 우리의 인생은 죽죽 뻗어가기보다는 그럭저럭 꼬여들었다...(중략)...그러는 동안 우리 모두 공평하게 사십을 넘겼다. 만수산 드렁칡. 삶의 여정이란 것이 사실로도 칡처럼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달을 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만은 좀 다른 것이리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 깊은 슬픔 / 신경숙 >
* 무슨 일이든 기다릴 수만 있으면, 삶이란 기다림만 배우면 반은 안 것이나 다름없다는데, 은서는 웃었다. 그럴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뭔가를 기다리지. 받아들이기 위해서 죽음까지도 기다리지. 떠날 땐 돌아오기를, 오늘은 내일을, 넘어져서는 일어서기를, 나는 너를.
*
"마음속에서 그리움이 사라졌소. 다시는 시를 쓰지 못할 것 같아요. 아무것도 그립지 않으니 마음이 지옥이오. 어린파 연작시를 쓸 때는 개인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너무도 어려운 때였지만 그래도 마음은 늘 그리운 것이 있었지. 그것이 시를 쓸 수 있게 했소. 하지만 지금 그것이 끊겼소."
* 하지만 너무 늦었어.
나, 삶을 되찾기엔 너무 멀리 나와버렸어. 무엇이라도 간절하게 원하면 거기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지. 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그 원하는 것에 닿아지지가 않았어.
너는 너 이외의 다른 것에 닿으려고 하지 말아라. 오로지 너에게로 가는 일에 길을 내렴. 큰 길로 못 가면 작은 길로, 그것도 안되면 그 밑으로라도 가서 너를 믿고 살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거라.
< 열정의 습관 / 전경린 >
*
"많은 사람이 사랑을 원하지만 실은 저마다 사랑할 수 있는 정량이 달라요. 미안하지만, 당신은, 미숙해 보여요... 내게는 그렇게 보이는군요. 당신이 진정한 상대를 만나기까지는 많은 편력이 필요할 것만 같아요. 맨 처음의 여자로부터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진정한 상대가 아닐 때는 머무르지 말아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죠. 다시 떠나는 용기요. 먼저 반대의 성인 여자라는 일반적인 대상을 향해 당신의 의식을 열어야 할 거예요. 우리는 경험을 통해 사는 것이니까요. 당신은 지금 굳게 닫혀 있어요. 시간만 흘러갈 뿐 생은 시작되지 않아요.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의 상태라고 말하지만, 아니예요. 사랑은 지식이고 무한히 생동하는 방법이고 영혼의 상상력을 삶 속에서 서로에게 실현하는 변태죠. 구체적으로 알지 않으면 사랑할 수도 없어요."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 은희경 >
* 내 친구 중에는 세상의 인연이 다 번뇌라며 강원도 어느 절로 들어가다가, 시외버스 안에서 군인 옆자리에 앉게 되어 두달 만에 결혼한 애가 있다. 인연을 끊겠다는 사람일수록 마음 깊이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다.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집착의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이 견뎌야 할 고독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 그녀가 더브(dove) 콤플렉스에 대해 말해주었다. 비둘기 암컷은 수컷한테 그렇게 헌신적이래. 그런데 일찍 죽는단다. 자기도 사랑받고 싶었는데 주기만 하니까 허기때문에 속병이 든 거지. 사람도 그래. 내가 주는 만큼 사실은 받고 싶은 거야. 그러니 한쪽에서 계속 받기만 하는건 상대를 죽이는 직이야. 인연을 맺는다는 건 참 끔찍하지 않니?
< 새 / 오정희 >
*세상에 한번 생긴 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해준 것은 연숙아줌마이다. 아주 먼 옛날의 별빛을 어제사 우리가 보는 것처럼 모든 있었던 것, 지나간 자취는 아주 훗날에라도 아름다운 결과 무늬로,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옥상으로부터 팽팽히 당겨진 줄이 그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그 줄이 끊긴다면 앗 하는 순간 그는 떨어져버릴 것이다. 나는 아슬아슬한 마음이 되었다. 남자가 황금빛 속으로 들어갔다. 해가 불구덩이처럼 유리창을 태우고 그 남자를 삼켜버렸다.
불 속으로 들어갔어
우일이는 입을 벌리고 정신없이 그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남자는 녹아버릴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 기찻길 / 홍성원 >
*한 사람을 새로이 친구로 맞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에게는 삶의 재산이 붙는다는 증거다. 그는 옛날에는 부모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은 재산으로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주변에 넘쳐나던 재산들이 지금은 전쟁에 의해 어딘가로 흩어져 그의 곁에서 사라졌다. 그는 이제 남들의 도움이나 보살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하나하나 새로운 재산을 만들어가야 한다. 삶에 있어서의 재산이란 단순히 돈이나 물질이 아니다. 삶의 재산은, 그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오는 타인들의 무수한 시선과 간섭이다.
< 결혼은 미친짓이다 / 이만교 >
*
(친구의 부음을 전해듣고)
"웃긴다."
"뭐가?"
"이미 까마득히 잊혀진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도리어 어쨌든 여태 까지는 살아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나는 상관 없는데, 그러나 한가지만 선택해서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 사소한 날들의 기록 / 조경란 >
* 그리고 그는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을 읊조렸다.
'제가 변경시킬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을 주옵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위해서는 그것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옵시고, 또한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내려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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